Life, opinion

을지로3가 군밤장수 이야기

Twerd Klony 2023. 11. 11. 22:24

 

정신나간 더위가 끝나고 긴팔을 입고 다니던 어느 날 회사 근처에 군밤트럭이 보였다.

오 군밤의 계절이 왔구나 하고 다음날 사자 하고 다음 날 찾았는데 없더라.

하루만 왔나 하고서 잊었는데 그 다음 주 수요일에 보이는 걸 보고

아~매주 수요일만 오는 구나. 오늘 먹어야 겠다 하고 갔다.

 

"저 군밤 한 봉지 얼마에요?"

"..."

"저 군밤 한 봉지 얼마에요?"

"오천원 만원"

"(나한테 반말한 거 맞나)계좌이체 될까요?"

"계좌이체는 안되는데"

 

반말도 기분나쁜데 이 대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상 황당하고 기분 나뻐서 아예;; 하고 돌아와서 회사 사람들에게 신나게 욕을 했다.

저런 사람 처음 본다고 절대 안먹을 거라고 공언했다.

 

 

 

 

 

 

 

하 근데 못먹으니까 더 생각나고 먹고 싶어 지는 얄궂은 인간의 심리를 어찌해야 하나.

 

 

결국 다시 찾아감. 오천원 짜리 한 장 준비.

"군밤 한 봉지 주세요"

"...(턱)"

 

하 또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없이 군밤만 줌 ㅋㅋㅋㅋ 진짜 개빡침

그래 알면서 간 거니까 하고 참고 갔다.

 

뜨끈한 종이봉지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하나를 먹었다.

 

"...!!!"

 

미쳤다 너무 맛있다.

퍽퍽하지 않고 달달하면서 일반적으로 조금씩은 있는 껍질도 거의 없다.

투박하지 않고 동글동글한데 일케 맛있을 수가 없다.

이거슨 마치 군밤계의 에르메스.

 

그래 우연일 거야.

그 다음 주에 또 갔다. 이번엔 검증을 위해 회사 선배까지 데리고 감.

 

세상에 지난 주와 똑같이 맛있다.

선배도 너무 맛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어 보라고 권했다.

인정해야 한다. 이건 진짜였다.

근데 정말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 조금만 친절하면 밤껍질이 안까지나.

 

그 다음 주에 또 가봤더니 이번에는 다른 한 분이 대화를 거신다.

"이게 돌로 구워야 맛이 균일하고 더 맛있어 집니다"

 

맛의 비결이라는 마법의 장치

그렇다 나에게 대답하지 않은 아재는 군밤담당이고

응대는 나머지 한 분이 담당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혼자 있을 때는 대응해줘야지!!

진짜 하루 종일 저 기계만 바라보고 군밤만 깎고 있던 아재.

 

이 이야기가 퍼지자 회사에서는 저 분을 군밤 깎는 노인, 밤친자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매주 수요일만 되면 오천원이나 만원짜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도공마을의 하가네즈카도 아니고 군밤을 그렇게 열심히 깎아서 뭐하나 싶다가도

백화점에서 얼마 되지도 않은 양을 만원에 파는 거 보고 그깟 불친절 뭐 감수하지 내가 허허허 하고 바뀌었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 졌던데 밖에서 군밤 깎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하세요 아재.

다음 주에 또 사러 갈게요.